“곤아.”

 “닥쳐.”


 곤이는 거칠게 말하며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세게 붙잡힌 손목이 욱신거렸다. 나는 곤이의 눈을 보았다.


 “입술 상한다.”

 “조용히 하랬지.”


 내가 또 다른 눈치 없는 말로 곤이의 심기를 건드리기도 전에, 나의 입술은 턱 막혀버렸다. 곤이가 말릴 새도 없이 입술을 부딪혀왔기 때문이다. 까슬한 입술을 내 입술 위에 내리눌렀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티비에서, 영화관에서, 수도 없이 본 장면이었다. 그러나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떤 눈을 하고, 어떤 입모양을 해야 하는지. 원래대로라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 상황인지. 엄마도, 할매도, 심 박사 마저도 가르쳐준 적이 없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갑자기 마주했을 때, 사람은 ‘당황’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엄마의 낱말 카드에는 지금 이 순간과 비슷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 행위가 보통 '사랑'이란 감정에 수반된다는 것 정도는 나라도 알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공포조차 느끼지 못하는 내가, '사랑'을 할 수 있으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곤이는 내 뒷목을 움켜잡으며 마른 입술을 혀를 내어 축였다. 뜨겁고 물컹한 것이 닿자 찌릿한 감각이 뒷골을 스쳤으나, 나는 여전히 나를 휘어감는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 어떤 마음인지 알 길이 없었다. 눈만 꿈뻑이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곤이는 내 손목을 붙잡은 손을 내 머리 위로 올렸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흠칫 몸을 떨자 곤이의 우악스러운 몸짓 사이에 얼핏 머뭇거림이 비치는 듯 했다. 뜨거운 숨이 오가자 호흡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조금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벌어진 입술 틈으로 곤이의 혀가 파고들었다. 속수무책으로 열린 입 안을 침범하고, 천천히 훑었다.


 코로 숨을 쉬어야 한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으나 빈틈없이 맞붙인 얼굴 덕에 쉽지만은 않았다. 숨이 모자라, 나는 정신없이 헐떡대기 시작했다. 가쁜 호흡은 전부 곤이의 입 안으로 먹혀들어갔다. 곤이는 혀뿌리를 뽑을듯이 내 혀를 옭아매고, 느릿하게 입 안을 쓸었다. 질척하게 타액이 뒤섞이는 소리에 간간히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섞여들었다. 눈앞이 희뿌옇게 가려지고, 곤이가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으르렁대는 소리가 딱 붙은 몸을 통해 들려왔다. 다음 순간에는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그저 말하는 게 거칠어서 혀놀림도 거칠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언젠가 곤이가 노트북을 들고 책방에 온 적이 있다. “못보던 물건을 들고 오면 자랑하고 싶다는 뜻이야. 관심을 보여줘야해.” 희미하게 남은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하지만 곤이는 노트북을 자랑하러 온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 한 궁금한 척을 하려 애쓰는 나에게 곤이는 동영상을 틀어주었다. 이어폰도 끼지 않은 채였다. 화면에는 온통 살색이 가득했다. 둘 밖에 없어 텅 빈 책방에 난잡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곤이는 킬킬거리며 웃었다. 내 반응을 기대했던것 같다. 나는 이리저리 얽혀있는 남녀의 모습 위로 중학교 성교육 시간을 떠올렸다. 교육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져 귀여운 얼굴을 한, 고작 헐벗은 그림일 뿐이었다. 남자아이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야유인지 환호인지 모를 것을 퍼부으며 연신 웃어댔고, 몇몇 여자아이들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아아 선생님, 하고 비명같은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것이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했다. 곤이가 지금 나에게 바라는 것도 그것이 아닐까 싶었으나, 나는 곤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연기하기엔 너무 어려운 감정이었다. 나는 눈도 피하지 않은 채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았고, 곤이는 곧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노트북을 덮었다. 외설스러운 소리가 뚝, 끊기자 책방이 다시 고요해졌다.


 곤이의 입술도 떨어졌으나, 그때와는 달리 책방 안은 금방 조용해지지 않았다. 나는 막혀있던 숨을 급하게 뱉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거친 호흡이 책장 사이사이 울려퍼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멀쩡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한껏 괴롭혀진 혀와 입술이 얼얼했다. 손목은 아직 꽉 붙들린 채였다. 머리 위로 들려 짓눌린 팔이 저리고, 손목은 욱신거렸다.


 “아파. 풀어줘.”

 “아픈건 아냐?”


 병신. 그렇게 말하는 곤이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나는 느낄 수 없었으나, 울어야 할건 나라는건 알고 있었다. 곤이는 나에게 강제로 키스했고, 학교에서 배운대로라면 이건 명백한 범죄였다. 그런데도 곤이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화난것 같기도 했고, 슬픈것 같기도 해서 이해하기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고통은 느낄 수 있다고 지난번에도 말했는데” 하고 받아치려던 것을 잊었다.


 엄마는 내게 감정들의 이름을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었다. 그러나 커가면서 마주한 사람들의 감정은 한 가지 이름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즐거우면서 괴로워했다. 또 어떤 사람은 고마워하며 화를 냈다. 그런 복합성은 내겐 너무 어려운 개념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지금 곤이의 감정은 알것도 같았다. 곤이는 내게-나를 향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곳엔 나밖에 없으므로-화가 나는 동시에 나를 연민하고 있고, 또 나를 미워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혐오하고 있다. 곤이는 미안해하고 있다. 수많은 감정들 위로 곤이는 내게 저지른 일을 자책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 손목을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쩐지 메스꺼운 기분이었다. 속에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것 같기도 하고, 솟구쳐오르는것 같기도 했다. 토해내고 싶은 기분이라는건 내게 무척 생경한 것이었다.


헨레 아니고 헨리입니다

Henre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